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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0-10-08 13:46
[시민과 변호사] 이달의 법률가 - 임통일 변호사 인터뷰(2010.6.)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6,227  

이십여년 전 그 어느 때, 당첨되었을 것이 확실한 주택복권을 찢어버렸단다. 당첨이 확실했다?... 지금에서야 좀 웃기는 얘기 같지만, 그런 희망이나 품을 정도로 절망적인 가난 속에서 고시공부를 시작했다는 의미였다. 그런데...왜? 당첨을 확신한 복권을 찢어버렸을까?

헛된 희망을 남김없이 버리고, 그저 두렵고 막막한 현실을 그대로 맞이한다는 자세가 아니었으면 지금의 '나'는 없었다고 그는 말한다.

스물아홉 병장으로 제대해서, 넉넉지 않은 고령의 부모님께 얹혀살며 다시 고시공부를 시작하려니 엄청 미안했단다. 그 나이면 대기업 취직도 마지막 기회! 확 취직해버려?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꿈을 꾸었다가 포기하는 것은 인생을 포기하는 거였다.
'인생은 도박이다!' 그만큼 굳은 다짐을 하고 책상 앞에 앉았지만, 졸음은 찾아오고 꿈이 좋아 사놓은 복권 당첨하면 할 일, 부모님을 좋은 집에 이사시켜드려야지, 하는 상상의 나래로 마음의 각오가 허물어져 가더란다.

그러다가, 갑자기 찾아올 행운에 인생의 가장 커다란 스릴과 도전의 기회를 놓치게 될까봐, 나머지 삶이 흐믈흐믈 싱겁게 마감되어버릴까 두려워 과감히 인생역전을 걷어차 버렸단다. 바보...?
오늘은 바로 그 과감한 '바보' 변호사 임통일에 대해 소개해보고자 한다.

노영희 : 임 변호사님 안녕하세요?
임통일 : 예, 어서 오세요.
노영희 : 인터뷰를 위해서 변호사님에 대한 자료를 찾다보니 상당히 별난 데가 있으신 것 같더라구요.
임통일 : 하하, 그게 무슨 뜻인가요?
노영희 : 클래식을 즐겨 부르시고 중창단 테너로 정기연주회도 매년 하고 계시고, 색소폰을 연주하는 변호사로서도 명성이 자자하신 반면, 중국법률관련 한·중 국제법률연구소를 운영해오셨고 요즘엔 4대강 사업 저지를 위한 국민소송단 단장으로 활동하시고 대한변호사협회 산하의 노인법률지원위원회 위원장으로도 일하시면서 공익활동에도 열심히 관여하시니 말입니다.
임통일 : 뭐. 말씀하시는 것처럼 거창한 건 아니고, 그냥 모범학생처럼 배운 대로 하다보니 그래요. 중고등학교 때 음악도 배웠잖아요? 나라는 사람과 변호사 임통일로서의 내가 어긋나지 않도록 살다보니 그냥 이런저런 일에 똑같이 시간을 쓰게 되는 것 같습니다.
노영희 : 게다가 제가 변호사님 블로그의 글에서 우연히 읽게 된 사항인데, 당첨이 확실한 복권을 그냥 찢어버리셨다는 이야기도 있더라구요.
임통일 : 아, 제 블로그 글을 보셨군요.
노영희 : 정확하게 어떻게 된 일인가요?
임통일 : 저는 시대적으로 어수선하던 1980년대에 대학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4학년이 되어서 사법시험을 처음 준비해서 그 다음해인 대학원 1년차 때에 1차시험에 합격을 하게 되었지요. 하지만, 정신 못차리고 방황하며 놀다보니 두 번의 2차시험 기회도 살리지 못했고, 한심스럽게도 아무것도 이룬 것 없이 스물일곱 늦은 나이에 사병으로 군대에 입대할 수밖에 없었어요.


노영희 : 예전에는 사법시험 합격이 정말 어려웠었지요.
임통일 : 철이 늦게 들었지요. 2년의 군대생활을 마치고 스물 아홉 가을에 제대하면서 60이 넘은 늙으신 부모님께 의지하여서라도 씨 뿌린 것을 거두자고 굳게 결심하고 다시 시험공부를 하게 되었지만 정작 책을 보려니 잠만 오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태라 슬쩍 취직이라도 해서 효도나 제대로 할까 하는 유혹도 있어 결심이 흐릿해졌어요.
노영희 : 말씀 듣고보니 저도 시험공부하던 때가 생각나네요.
임통일 : 취직시험을 포기하기로 한 날밤, 신기하게도 해운대에 큰 바닷물이 해일처럼 밀려올 때 상어같이 싱싱한 큰 고기가 나에게 와서 함께 노는 꿈을 꾸고는 복권 두 장을 사서 품 속에 넣어두었어요. 며칠간 여름철 뭉게구름처럼 일어나는 잡념, 특히 복권 생각에 몰두하는 저를 발견하게 되었지요. 꿈이 워낙 좋았고 분명히 당첨이라는 확신이 드는 거예요. 복권추첨일 오전 잡념 중에 갑자기 '내가 지금 뭐하는 거냐'하는 각성과 함께 '과연 내 미래 개척을 이런 헛된 망상 같은 것에나 의존하려 하다니!'라는 자신의 나약함에 대한 꾸짖음이 일었어요. 혹시라도 복권이 당첨되면 드라마틱한 인생의 기회, 막막한 어려움을 단련으로 극복하고 고된 노력의 갈증 끝에 마시는 샘물 같은 미래는 영원히 사라지는 게 아닌가. 그것이 더 두려웠지요. 끝 모를 터널 같은 나의 현실을 회피하지 않고 온전히 내 것으로 받아들이자. 그래서 복권을 찢어버렸던 것이지요.
헛된 희망과의 결별이었지요.
노영희 : 와! 저로서는 상상도 못하겠는데요.
임통일 : 마음의 문제였어요! 어차피 당첨확률은 거의 없잖아요. 하하. 여러 번 보도가 되기도 했지만 복권 당첨으로 일확천금을 얻게 된 사람들이 얼마 안 가서 삶의 지표를 잃어버리고 빈털터리가 되거나 오히려 인생이 꼬인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노영희 : 그럼, 변호사님께서는 그렇게 복권을 찢어버린 후에 시험에 합격하신 건가요?
임통일 : '배수의 진을 치고 전투에 임하였을 때 패배가 없다'는 말도 있듯이 어쨌든 저는 복권을 찢어버린 후 20개월 동안 정신을 집중하여 공부한 끝에 결국 시험에 합격하였고 면목을 일신할 수 있었습니다.
노영희 : 그런 얘기는 영화에서나 나오는 것으로 알았었는데, 변호사님이 그 주인공이셨군요.
임통일 : 하하, 도깨비 같은 얘기지요.
노영희 : 그런데, 변호사님께서는 선구자적인 시각을 가지고 활동을 하시는 편인 것 같습니다.
임통일 : 그런가요?
노영희 : 지금은 중국과의 교류나 중국법에 관한 연구나 법률서비스가 보편화되었지만, 국내에서 인터넷을 통해서 중국투자에 대한 법률상담을 개인적으로 시도한 것이나, 중국 유학생 및 국내체류 중국인들을 위한 법적 지원이 변호사님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하던데요.
임통일 : 글쎄요. 그렇게까지 말하는 건 과장이 될 수도 있지만, 어쨌든 1997년부터 제가 중국어를 공부하고 사이버 연구소인 한·중 국제법률연구소를 운영하면서 중국 관련 일을 하였고 직접 국내에 유학 온 중국인 변호사들에게 활동 기회를 제공하였지요.
노영희 : 변호사님께서는 2008년 12월경 주한 중국대사관으로부터 감사패를 받기도 하셨네요.
임통일 : 예, 제가 99년부터 한 · 중 국제법률연구소 홈페이지를 통한 무료법률상담, 오프라인에서 중국에 투자하는 기업을 대상으로 중국 법률상담과 법률검토, 그리고 투자계약서 작성 등의 일을 하면서도 한중간 민간교류의 가교역할에 중점을 두고 활동했어요. 한중문화협회 활동을 통한 한중 문화교류, 대학생교류, 한국에 와 있는 중국은행의 초기 법률고문활동, 중국 언론기관 특파원들과의 교류, 중국 유학생 및 동포들의 인권문제에도 관심을 가져봤습니다. 그런 식으로 활동을 하면서 주한 중국대사관의 외교관들과 개인적인 교류를 했고, 대사관 법률고문으로서 한·중간에 민감했던 성화봉송 관련 유학생 폭력사태의 원만한 해결에 일조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랬더니 작년에 재한 중국공민들의 합법적 권익수호에 도움이 되었다며 감사패를 주더군요. 앞으로도 다른 나라 이주노동자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겠지만 재한 중국인 이주노동자들이나 유학생들이 우리 사회에 좋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계속 신경을 쓰려고 합니다. 한국과 중국은 사회체제가 다르기 때문에 민간외교가 한중간의 성숙한 교류를 이끌어 가야 한다고 봅니다. 통일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노영희 : 변호사님은 북한이탈주민 돕기 활동도 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 그렇게 힘없고 사회에서 소외된 계층들에게 항상 관심을 가지시는 이유가 있을까요?
임통일 : 뭐, 특별한 이유는 없고 아무래도 굼뜨다보니 남들이 하지 않는 일에나 기회가 주어지는 거 아닐까요? 하하. 그리고 고지식하게 배운 대로 하다보니... 흥미도 가지는 것 같습니다. 변협 인권위원을 오래하다보니 우연한 계기로 그런 쪽에 관여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노영희 : 변호사님께서는 정부가 추진하는 4대강 사업 저지를 위한 국민소송단 단장으로 활동하고 계시지요?
임통일 : 그것도 어쩌다보니 그렇게 되었네요. 중학교 다닐 때 강을 보며 이십리를 걸어다녔는데, 그 정서적인 이유랄까요? 유구한 역사 이래 우리의 문화와 역사 그리고 생명이 함께 살아 숨쉬는 4대강입니다. 4대강의 자연성을 너무 심하게 파괴하는 내용의 사업입니다. 제시하는 목적달성이 의심스러운 상태에서 국부를 기울여, 강을 호소로 만들려고 합니다. 강이 가지는 자연의 생산성과 '소통'을 막아 자연환경파괴는 물론 이로 인해 장래 국가사회에 엄청난 재앙과 부담을 줄 것입니다. 유사 이래 가장 큰 국책사업이 제대로 된 타당성조사, 환경영향평가나 신중한 대책없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많은 국민이 생태환경의 파괴를 걱정하고 있습니다. 물문제나 홍수문제 해결은 고사하고 오히려 상수원인 강물의 수질악화, 홍수유발, 오염토 적치문제, 농경지 침수, 일자리 상실 등 많은 문제점이 있다는 지적을 차마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노영희 : '보'를 건설해서 물의 흐름을 막아놓는다면 수질 개선과 정화에 문제가 생길 수 있겠는데요?
임통일 : 예, 장래적으로 그 유지관리 비용이 사업예산보다 더 많이 들 것입니다. 우리 예산에서 일정비율의 돈이 추가로 계속들어 간다고 생각해보세요.
무엇보다 더 큰 문제는 모래톱이나 동식물상이 어울려 자아내는 자연스런 경관이나 생태자원을 한꺼번에 영원히 잃게 된다는 거겠죠.
노영희 : 그런데 이런 사건은 공익소송이라서 변호사님께서 노력하시는 것에 비해 착수금이나 성공보수 등을 받을 수도 없을 것 같은데요?
임통일 : 참여하는 모든 변호사들이 사명감을 갖고 무료변론을 하고 있습니다. 돈을 좀 벌어야 되는데 정부정책에 반대하는 이런 일에 빠져있다고 처음엔 집에서 걱정하기도 했지요. 하지만 요즘은 하려면 욕먹지 말고 제대로 해라고 합디다. 하하. 처음에 이 사건을 맡게 된 것도 예전에 저와 인연이 있었던 교수님이 운하반대 교수모임에서 활동하고 계셨는데, 145여개 환경단체들이 꾸민 4대강사업저지범대책위원회와 협력하여 국민소송단을 꾸미면서 공동집행위원장으로 위촉하였고, 실무변호사 중에서 나이가 제일 많아 국민소송단 변호사단장을 맡게 되었습니다. 이름뿐이고 특별한 역할은 없습니다. 최근 한강, 영산강 사업계획 집행정지신청은 기각당했지만 본안사건은 강별로 팀이 꾸려져 잘 진행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정부정책에 대한 합법적인 비판 및 시정활동으로서 국가를 위한 것이니 만큼 앞으로도 열심히 할 예정입니다.

노영희 : 변호사님은 대한변호사협회에서 노인법률지원회 위원장도 맡고 계시지요? 노인법률지원회에 대해서 좀 설명해주시면 좋겠는데요.
임통일 : 예전에 천기흥 회장님이 협회장으로 계시던 때에 경기노인학대 예방센터에서 상담종사자들에 대한 집체 법률교육을 해달라는 요청이 왔었습니다.
그래서 인권위원회에서 소위원회를 만들어 그 상담자들을 위해서 구성원변호사들이 노인학대 예방 법률매뉴얼을 만들어 교육을 하게 되면서부터 오늘의 노인법률지원위원회로 확대하여 출범시키게 된 것이지요.
노영희 : 우리나라가 급속도로 고령화사회가 되면서 노인문제가 심각한데, 변호사들이 그간 소홀히 했던 노인분들에 대한 접근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게 문제인 것 같아요.
임통일 : 우리 사회의 노인인구가 이미 전체 인구의 10%를 넘었고, 2018 년에는 14% 정도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나라는 초고령사회가 되는 것인데, 문제는 저출산으로 갈수록 생산인구가 감소하면서 부양의무가 한층 가중되기 때문에 인구문제는 하나의 큰 재앙이라는 시각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거죠. 결국 국가사회적으로 노인을 바라보는 시각이 지금과는 달라져야 되고, 노인을 생산인구로 흡수하면서 그들에 대한 재교육을 해주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겁니다. 그런데 이전까지 변호사단체에서는 그런 식으로 노인에 대한 인식이나 고령화사회에서의 변호사들의 역할에 대한 인식을 가지고 있지 못했기 때문에 우선은 그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서, 지속적으로 노인복지 종사자들과 법률종사자들이 연계해서 협력해야 되겠다고 생각하게 된 거죠.
노영희 : 변호사들도 의뢰인이 노인인 경우에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어서 힘들어 하는 경우들이 있거든요.
임통일 : 그렇죠. 의뢰인의 고령화는 하나의 추세이므로 변호사들이 노인에 대한 인식이나 노인 고객에 대한 상담에 있어서 특별한 관심을 갖지 않으면 곤란한 상황이 생길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회적 협력 지원활동을 통해서 다른 복지종사자들과 효율성 측면에서 접근하면 상호 윈윈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였던 겁니다.
노영희 : 어떻게 고령화사회에서 법률서비스 기회를 넓히고 관련 종사자들과 상호 윈윈이 이루어질 수 있는 건가요?
임통일 : 고령화사회가 된다는 것은 변호사들의 입장에서 보면 법률서비스를 제공할 대상도 노령화된다는 얘기가 됩니다. 따라서, 변호사들이 관련기관과 협력하여 고령화사회와 노인들에 대한 인식을 넓히고 제도 개선에 공헌하다보면 활동영역이나 기회도 확보되고 노령화되는 의뢰인에 맞춰서 법률지원을 한다는 인식도 자연스레 개발하게 될 것입니다. 특히 요즘 변호사 수가 늘어나면서 힘들어하는 변호사들이 많은 상황에서는 그렇게 법률서비스의 대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꿔서 적극적으로 자신의 영역을 개척하려는 자세가 필요하겠지요.
노영희 : 어떤 식의 개척이 가능할까요?
임통일 : 예컨대 성년후견제도 등의 도입과 관련한 변호사단체의 역할을 강화하여 변호사들이 제도의 시행과 관련된 역할모델을 개발해서 미리 연수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노인 관련 제도를 모니터링하면서 분야를 개척하고 법률구조 활동을 벌이면서 예방적 차원에서 접근하게 된다면 당연히 변호사로서도 영역이 넓어지는 것이고, 노인들도 체계적인 법적 지원을 받게 되니까 상호 윈윈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노영희 : 그럴 수 있겠군요. 그렇다면 지금까지 노인법률지원회의 활동을 통해서 얻게 된 성과가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임통일 : '노인종합복지관협회'와 연계해서 각 복지관별로 변호사들을 파견해서 상담도 하고, 법률교육도 시키고 있으며, 변호사들이 할 수 있는 한에서 봉사의 장을 마련해가고 있는데, 우리 회에서 이를 제도화시키는 데 약 1년 정도가 걸렸습니다. 구체적으로 얘기하자면 우리 위원회에서 지원변호사단을 모집하여 현재 180여명 규모이고, 230여개 노인종합복지관이 회원인 한국노인복지관협회와 협약을 맺어 복지관 내에 상담이나 교육환경을 만들고 지속적인 사업이 가능하도록 시스템을 갖추는 일, 복지관장과 각 지방변호사회의 변호사단과 간담회를 개최하여 상호 협력창구를 만든 일, 협회 인권과에 창구를 일원화 모니터링을 하고 수시로 위원회를 개최하여 문제점을 점검해왔습니다. 최근에는 그동안의 상담 교육활동의 경험을 토대로 노인법률지원지침서를 발간하여 우선 지원단 변호사들에게 배포하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약 2,000건의 상담을 했고, 법률교육도 150회 이상 이루어졌는데, 회당 많으면 80명 가량이 수강을 하므로 벌써 수천명의 노인들이 법률지원 혜택을 받은 셈입니다.


노영희 : 그런 일을 하려면 시간과 경비도 많이 들텐데요.
임통일 : 예, 특별히 열심히 하는 위원이나 변호사단 변호사님들께서는 많은 희생을 하고 있다고 봅니다. 사실 지침서를 발간하는 일, 현장에 나가 상담교육을 하거나 간담회를 하는 등의 활동을 하는 데에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들어갑니다. 일정한 실비를 지원하고 있지만 부족한 편입니다. 지금은 변호사협회 인권사업비나 변협 법률구조재단에서 예산을 책정해서 쓰고 있는데, 회원들의 회비로 운영되는 활동이므로 변호사들의 일자리 창출을 중심개념으로 두고 일하고 있습니다.
노영희 : 상담이나 강의를 통해서 변호사님들이 사건을 수임하기도 하시나요?
임통일 : 글쎄요. 요즘 대부분 노인들은 경제력이 없고 그러다보니 어떤 일에 대한 결정력이 없어요. 그래서 상담은 한다 하더라도 사건 수임하고 직접적인 연결이 잘 이루어지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노영희 : 그러면 변호사님들의 참여도가 점점 떨어질테고, 어려운 점도 있겠는데요?
임통일 : 복지관 교육을 가보면 참여 어르신들의 강의 집중도는 대단합니다. 한 번 하면 해볼 만하다고 느끼게 됩니다. 지방에서 어떤 변호사님이 복지관에 상담을 하러 가시면서 자신의 상담을 홍보하는 플래카드를 걸어줄 것을 요구하여 복지관에서 난감해 하셨다고 하던데,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명확한 활동지침이나 실비보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대로 잘되고 있다고 봅니다.
노영희 : 아, 그럴 수도 있겠군요.
임통일 : 대부분의 변호사님들은 특별히 어떤 이기적인 목적을 가지고 이 사업에 참여하시지는 않습니다. 노인의 특성을 이용해서 사기를 치는 사람들이나 노인을 학대하는 일이 많아지면서 노인들이 위험에 처할 수 있기 때문에 예방적 차원에서 그리고 법률적 차원에서 도움을 주고자 하는 마음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노영희 : 변호사님께서는 해마다 중창단 정기연주회도 하시고 색소폰 연주도 아주 잘하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임통일 : 그냥 좋아서 하는 정도죠. 제가 '어울림 남성중창단'이라는 중창단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올해도 4월달에 강서구민회관에서 정기연주회를 열었습니다. 다른 법조인들도 포함하여 중견사회인들로 구성되었고 클래식만 연주하는 것은 아니고, 한계령이나 짠짜라, 낭랑 18세 같은 가요나 마징가제트와 같은 동요 같은 것을 성악적 발성으로 부르는데, 이번 발표는 구성도 좋고 꽤 실력들이 늘었다는 평을 들었습니다.
 
노영희 : 바둑도 잘 두시고 골프도 하시고 글도 쓰시는 등 재주가 아주 많으신데요.
임통일 : 다양한 걸 시도하고 배우려는 성격 탓으로 그냥저냥 묻어가는 정도입니다. 어려서 시골에서 자랐는데 중학교 때 등하굣 길이 좀 멀었습니다. '세광 애창 가곡집'을 사서 불러보기도 하고, 하모니카도 연주하며 다녔던 기억이 납니다. 재능은 없지만 그냥 배운 것은 꾸준히 하며 즐기는 버릇이 있습니다.
노영희 : 색소폰 연주도 어린 시절부터 하셨나요?
임통일 : 아닙니다. 색소폰 연주는 한 7년 정도 되었는데, 10시간 동안 3년 해야 대가가 된다는데, 음색도 좋고 집중해서 연주하는 그 시간만큼은 온전히 제 시간인 것 같아서 일주일에 한두 번 퇴근 후 연습하고 있지요.
노영희 :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시간가는 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사모님하고는 어떻게 만나셨는지, 자제분들도 변호사님과 같은 길을 가기를 원하시는지 등을 안 여쭤볼 수가 없네요.
임통일 : 좀 쑥스럽네요. 우리 집 사람은 연수원 때 만나게 되었는데 집 사람이 순진해서, 가난하고 특이한 성격에 아무 물정 몰라 고생만 시키는 저의 감언이설에 속아 청혼을 받아 준 게 지금도 너무 고마울 따름입니다.
노영희 : 성격이 서로 다르신가요?
임통일 : 예컨대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생전에 부모님이 사셨던 전남 광양을 방문할 때 저는 거의 한 번도 같은 코스로 간 적이 없습니다. 다양한 것을 좋아하고 틀에 박힌 것을 싫어해서 계획성 없이 마음 내키는 대로 행동하는 경우가 많아서 집 사람이 예상 못한 고충을 겪을 때가 많죠.
노영희 : 사모님은 안 그러신가보죠?
임통일 : 우리 집 사람은 저하고는 반대로 조직적이고 철저한 스타일이지요. 계획적이기도 하구요.
노영희 : 자제분들은 두 분 중 어느 분을 닮으셨나요?
임통일 : 글쎄요. 아들하고 딸이 있는데, 지금 고등학생인 아들은 초등학교 때 동네 성당회보에 만화를 연재하고, 중학교 때부터 자기가 직접 아카펠라 곡을 만들어 더빙하고, 비트 박스 까페에 강의를 올릴 정도로 창의적이고 재미있고 글도 곧 잘 쓰는 편입니다. 작년 법무부 주최 모의법정대회에서 대본이 뽑혀서 장려상을 받기도 했고, 존 그리샴 같은 소설가가 되고 싶다고 하더군요.
노영희 : 아드님이 변호사님을 닮았나보군요.
임통일 : 딸은 언어 쪽에 재능이 있고 인내하면서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그렇지만, 제가 아이들에게 특별히 무엇을 원하거나 강요를 하지는 않고, 다만 자기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서 그 길을 가겠다면 적극적으로 도와주려고 하고 있습니다.
노영희 : 마지막으로, 변호사님 성함이 매우 특이하신데, 아버님께서 지으신 이름이라고 하시던데요.
임통일 : 예, 저희 아버님이 공무원이셨는데, 제 이름을 항렬따라 짓지 않고 특이하게 지으셨습니다. 당시 우리의 소원은 '통일' 아니었습니까! 하하! 우스갯소리로 변호사들은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사람들'과 친해서 유혹도 많고 힘든 일도 많은데... 이름 때문에라도 행동을 똑바로 하려고 노력하고는 있습니다.

노영희 : 정말 변호사님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3박 4일이 모자랄 정도로 달변이시고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마력이 있으신 것 같습니다.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임통일 : 여기까지 찾아와줘서 오히려 제가 더 고맙지요. 변호사를 오래 하면서 가급적 열심히 살려고 했었고,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살 작정입니다. 저와 같은 길을 가는 우리 법조 선배님들과 후배님들 모두 저와 같은 심정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웹진 '시민과변호사'의 편집위원으로서 여러분들과 인터뷰를 했었지만, 임 변호사님처럼 막힘없이 재미있게 이야기를 풀어주시는 분은 그리 많지 않았었다. 아마도 '소통'을 중시하는 강과 같은 영혼을 가졌으면서도 자신의 행동도 후회하지 않고 세속적인 이득이나 손해에도 크게 집착하지 않는 자유로운 '바보'여서가 아니었을까.